○ 인신매매란 “성착취나 강제노동 등 착취를 목적으로 폭행, 협박, 기만, 권력의 남용, 취약한 지위의 악용 등을 통해 사람을 모집, 이동, 은닉, 인계 또는 인수하는 것”을 말한다. (UN국제조직범죄방지협약을 보충하는 인신, 특히 여성 및 아동의 매매 예방 및 억제를 위한 의정서, 2000)

2022년 7월 19일 미국 국무부는 ‘2022년 인신매매 보고서’를 공개하고 인신매매방지와 관련한 한국의 지위를 2등급으로 강등했다. 2000년 유엔이 인신매매방지의정서를 채택하고 처음 보고서가 발간된 2001년 첫해 3등급을 받은 이래로 2002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1등급을 유지한 후 20년 만의 등급 하락이다.

법에 규정된 인신매매는 물리력이나 강압, 사기로 비자발적 노역이나 용역을 위해 사람을 모집, 이송하는 행위 등을 말한다.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우 주로 강제 성매매, 강제노동 등 약탈적 행위에 초점이 맞춰졌다. 또한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인신매매와 관련해 새로운 교육 과정을 추가하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전과 비교해 뚜렷한 성과를 나타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인신매매 피해자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인신매매 관련한 중대 범죄자가 1년 미만의 가벼운 형을 선고받거나 기소 유예 혹은 벌금형 처분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언급했다. 등급의 하향은 인신매매 방지대책과 관련한 정부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담고 있다.

○ 인신매매의 약 80%가 성착취를 목적으로 한 매매라고 추산한다. 그 대상은 대부

분 여성과 아동이다. (유엔, 2003)

○ 전 세계에서 매년 60~80만 명이 국내외적으로 인신매매되고 있으며, 여성들이 그 가

운데 약 80%를 차지하며, 여성들 중 절반은 미성년자로 추정된다. (미 국무부, 2005)

○ 전 세계 인신매매 피해자는 약 40,300,000명으로 추산되며 이중 79%는 성착취를 위한 인신매매이다. (국제노동기구, 2020)

성매매, 성착취 목적의 인신매매는 초국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여성과 아동에 대한 인신매매와 강제노동, 성착취 등은 경제적, 사회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상호연계 되어있다. 다양한 연구결과를 통해 드러나는 바와 같이 인신매매의 주 피해자는 가장 취약한 계층에 놓여있는 아동과 여성이다.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는 여성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며 결과적으로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태에서 성산업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인신매매 범죄조직에 있어 이 취약한 여성들은 이용에 대한 위험부담이 적으며, 수익을 창출하기 손쉬운 사업의 대상이 된다. 마약이나 총기류와 달리 여성은 여러 차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판매될 수 있으며, 여성들을 사고 파는 범죄자들은 처벌받는 경우도 적고 언도받는 형기도 짧다.

취약한 여성을 성산업 시장으로 내모는 다른 주요한 요인은 성적으로 착취할 수 있는 여성들을 사려는 남성들의 수요이다. 수요가 없다면 여성들을 공급할 필요가 없기에 인신매매 시장은 결국 붕괴할 것이다. 인신매매 에서도 흔히 성매매, 성착취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부분의 관점은 ‘수요’라는 핵심 요인에 초점을 맞추지 못한 채 성매매를 ‘선택’한 여성들을 주시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는데, 이는 사실상 성산업의 기득권층을 옹호하는 일이다. 성산업은 착취의 대상을 인신매매 여부 등 조건에 따라 구분하지 않기에 자발과 비자발의 논쟁은 무의미하다. 피해자가 발생하면 모든 알선자들을 착취 의도와 상관없이 인신매매에 알선 및 가담한 것으로 간주하고 처벌하는 규정이 필요하다.

2004년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통한 피해자보호 지원체계가 구축된 이후 현장단체는 성착취 목적의 인신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한 활동을 개진함과 동시에 성매매처벌법이 제대로 적용 및 집행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인신매매는 특히 성매매현장을 통해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로 기인한 여성에 대한 억압이 어떻게 잔존하고 있는지, 권력구조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성매매피해여성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으로부터 명백한 사건 없이 인신매매를 인정받은 사례는 매우 드물다. 또한 성매매진형의 변화에 따라 외국인 여성들의 유입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인신매매 및 성매매 알선과 강요의 형태도 날로 교묘하게 진화하고 있다. 이주여성들의 경우 인신매매로 인한 피해가 가중되는데 불안정한 체류 자격 등의 문제로 피해사실을 제대로 알리기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연예흥행비자(E-6)소지 이주여성의 상당수가 국내 성산업에 유입되었다는 인권위 실태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브로커에 속아 성매매에 유입되어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들의 사례가 증가하는 것을 보면 인신매매로 인한 성착취와 인권침해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목도하며 반성매매운동단체는 성착취, 성산업 구조의 해체를 위해 지속적으로 인신매매범죄자 처벌을 위한 인신매매방지법 제정을 요구해왔다. 각계의 노력을 통해 2021년 ‘인신매매등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2023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인신매매의 정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는 법안의 핵심사항이라 이를 만큼 중요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입법화된 법령은 여전히 인신매매 관련 정의규정에 한계가 있으며, 범죄자에 대한 처벌 규정 또한 삭제되어 있다.

혹자는 이야기한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여자를 인신매매해서 강제로 성매매를 시키는 경우가 있기는 하냐’고.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취약한 여성의 신체를 담보로, 마치 타당한 거래처럼 포장하여 사람을 사고 파는 성매매는 행태 그 자체로 인신매매일 것이다.

피해자는 존재하지만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자주 목격해왔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성매매현장에서 가해자가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 규정에 따라 응당한 처벌을 받는 사례를 경험한 바 없었다. 정부는 더 이상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피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인신매매방지법은 ‘인신매매’라는 죄명으로 별도의 처벌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데 법무부는 현행 형법으로도 인신매매를 처벌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수사기관에서는 처벌규정이 없는 ‘인신매매 죄‘를 자체로 수사하거나 기소하지 않을 것임이 당연하다. 우리는 또다시 가해자는 삭제된 채 피해자만 고통 받는 현실을 외면하거나 가해자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는 인신매매방지법이 사문화 되도록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인신매방지법, 제대로 된 처벌조항이 반드시 필요하다.